로비스트 문화 · 로비스트 제도화 · 영향력 증가 · 이익단체, 사회지단체

선진국 로비스트 법 “규제와 자율 사이”

K스트리트. 본래 백악관 북쪽으로 난 도로를 뜻하지만 로비활동 및 로비스트들을 상징하는 용어로도 통용된다. K스트리트 동쪽에는 국회 의사당이, 남쪽에는 백악관이 자리하고 있다. 미국에서 로비스트의 영역은 마치 미국 전역을 가로지르는 기차 ‘그레이하운드’가 닿는 거리만큼 넓고 촘촘하다. 미국의 심장부에 K스트리트가 자리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 오리건주정부 주한대표부 대표이자 인하대학교 아태물류학부 교수인 김진원 교수는 조선시대 태종 때의 ‘신문고’를 일컬어 “백성의 청원권을 실현시키던 도구 중 하나이자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로비’의 좋은 예”라고 말했다. 미 의회에서는 법이 제정될 때 시민들이 의견을 제시하고, 지역 대표에게 자신들의 이익이 반영되도록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여진다. 미국에서는 로비활동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대신 로비스트들은 모든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의무가 있다.

로비 활동은 1791년 규정된 수정 헌법의 청원권에 따른 시민 권리 중 하나로 법제화됐다. 1946년 미국은 ‘연방 로비규제법’을 제정해 로비스트 등록과 활동내용 보고를 의무화했다. 법에 예외조항이 많아 실효성을 의심받던 차에 미국 의회는 1995년 12월 19일 기존 법을 강화한 ‘로비공개법’을 제정했다. 로비공개법은 로비스트를 ‘업무 시간의 최소 20%를 의원, 의원사무실 요원, 정부 관리와 접촉하는 데 보내는 사람’으로, 로비의 개념은 ‘정책입안자나 결정자와의 직접적인 접촉뿐 아니라 정책에 영향을 주기 위한 준비작업’으로 정리했다. 또한 6개월 동안 5000달러 이상을 받은 로비스트나, 2만달러 이상을 수임한 로비 회사는 의무적으로 등록해야 하는 등 규제를 강화했다. 미국은 이어 2007년 ‘정직한 리더십 및 열린 정부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로비스트 법을 더 강화한 바 있다. 미국의 로비스트 법은 주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특징이 있다.

▲ 미국 국회 의사당 로비. 1886, Liborio Prosperi. 출처=위키피디아

워싱턴 정가에서 로비스트 문제는 잊힐 만하면 터져 왔는데 그중 2006년 ‘아브라모프 뇌물 로비스캔들’이 대표적이다. 워싱턴의 유명한 로비스트 잭 아브라모프는 인디언 보호구역 등에 카지노 도박장을 설치할 수 있도록 인허가를 받기 위해, 해당업자로부터 수천만달러의 로비자금을 받아 연방의원 등에게 뇌물을 뿌렸다는 혐의를 받았다. 아브라모프 스캔들로 인해 집권 여당이던 공화당의 하원 조직이 붕괴됐고, 아브라모프는 징역 5년 10개월을 받았다. 당시 백악관의 정치인들 중 아브라모프와 연루되지 않은 인물이 없을 정도라 워싱턴 최악의 로비스캔들로 회자되고 있다.

이처럼 로비스트법이 빠져나갈 구멍 없이 촘촘함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계에서 로비스트 관련 문제가 없지는 않다. 능력 있는 로비스트들이 자금을 끌어들여 의원에게 전달하고 영향력을 확대하게 되면, 부패의 고리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로비스트가 보좌관이 됐다가 행정부 관리로 영전하는 이른바 ‘회전문 현상’도 만연하다. 한용걸이 쓴 책 <K스트리트>는 로비스트가 점령한 미국 워싱턴 정가의 부작용을 “정치권은 자금을 이용해 선거를 치르고 권력을 장악해 이익집단의 요구를 입법과 정책에 반영해 해택을 준다. 이것이 로비와 정치권력의 순환 고리”라고 묘사했다.

미국에서 로비스트나 회사는 상원 사무국과 하원 사무국에 누구의 이익을 대표하는지, 고용 기간, 소득액, 경비로 인정되는 비용과 액수 등을 등록하고 6개월에 한 번씩 수령금액, 사용한 돈의 비용과 용도, 어떤 목적으로 지불했는지, 활동 내용 등을 보고할 의무를 가진다. 로비 공개법을 위반하는 경우에는 상하원 사무총장이 서면으로 위반 사실을 통보하는 게 원칙이다. 60일 내에 대응하지 않으면 사무총장은 위반 사실을 ‘컬럼비아 특별구’의 담당 연방검사에게 통지한다. 고의로 위반했을 경우에는 5만달러 이하의 민사벌금에 처해진다.

▲ 출처=하우스 오브 카드

김 교수는 미국 로비스트 문화의 장점으로 국가 차원에서 로비스트를 활용하면 ‘물리적 충돌’을 피할 수 있고, 전문적 정보를 얻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로비스트 문화의 장점은 갈등을 ‘대화’로 풀 수 있다는 점”이라며 “예를 들어 한국과 칠레 FTA 체결 당시 농부들이 집단으로 경부고속도로를 점령한 것, 광장에서 반대 집회를 하는 것 등은 물리적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이 큰데, 만약 로비가 합법화돼 있다면 로비스트를 활용해 ‘대화’로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에게 로비스트의 자격에 관해 물었다. 그는 미국에 로비스트 전문 양성 기관은 없으며, 로비스트는 ‘투명한 로비활동’을 펼치려는 자세를 지니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로비스트는 자기가 받은 접대의 세부내역 등을 필히 보고해야 하는 등 규정이 엄격하다”며 “간혹 검은 돈의 유혹으로 규정을 어기는 이들이 있는데 이런 일들로 로비스트의 명성에 흠이 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유럽의회의 로비스트 활동 전반은 유럽연합에서 규율하는데 비교적 규제가 적은 편이다. 1996년 유럽의회 본회의에서 로비스트에 대한 규제를 채택했으며, 로비스트들에게 의회 출입을 위한 최장 1년 유효기간의 출입 허가증을 발급한다. 또한 로비스트들이 자발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등록 시스템에 등록하고 행동강령을 따르도록 장려하고 있다.

‘로비스트의 왕국’인 미국 이외의 국가들에서도 로비스트 법은 각 나라의 정치체제와 밀접하게 발전해 왔다. 연고주의, 정실주의 타파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캐나다에서는 1988년 로비스트 등록 법을 법제화했다. 의회의 독립기구인 로비위원회에 ‘로비스트등록관’을 두고 관리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2006년 로비스트 등록 법에 대한 개정 내용에 ‘연방책임법’을 추가했다. 캐나다는 미국과 다르게 로비 활동에 대한 재무보고서를 요구하지 않는 등 공개 수준이 낮은 편이다. 로비스트와 관련해 별도의 법제는 없으나 의회 규칙, 로비스트 행동강령 등을 통해 불법로비활동 예방에 주력하고 있다.

독일은 유럽연합 내에서 로비스트 등록관련 구체적인 규칙을 선택한 유일한 나라로 연방의회에 로비스트를 등록해야 활동할 수 있다. 연방하원 의사규칙 부속서에 따르면 매년 모든 이익단체들은 로비스트의 성명과 직위 등을 보고해야 한다. 또한 이익단체 등록·공개 등 관련 법제는 없으나, 연방하원 또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매년 상기 이익단체 리스트를 작성해 공개한다.

이웃나라 일본의 상황은 우리와 비슷하다. 로비 관련 직접적인 법규는 없고 ‘공직에 있는 자의 알선행위에 의한 이득 등의 처벌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무원에 대한 알선‧청탁을 금지한다. 법 위반 시 1~3년간 징역 또는 250만엔 이하 벌금에 처하는 규정이 있다. 또한 정치자금 조성, 정치윤리, 선거부정 등을 다루는 정치개혁법을 바탕으로 이익집단의 불법 로비활동을 감시하고 축소시키려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마련해가고 있다.